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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 마곡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진경산수화의 매력에 흠뻑 빠지다여행이야기 2022. 11. 4. 10:10
주말이면 아이들과 저렴한 가격에 부담없이 갔다올 수 있는 곳을 찾는데요. 사람도 많이 없고 한적하여 나름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주차장은 협소하긴 했지만, 차 댈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는데요. 가급적 대중교통 이용하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주차 요금은 따로 없었고, 입장료는 성인1인 기준 1,000원이고, 운영시간은 17시까지랍니다.
2층에는 ‘겸재정선기념실’ 이라는 곳이 있었는데요. 다양한 작품을 오랫만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아시다시피 겸재는 정선의 호를 뜻합니다^^시작은 겸재 정선의 출생과 어린시절의 모습들을 기록하고 있었는데요.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타고난 재능’ 도 있었지만, 부친의 짧은 생애(~52세)로 인한 집안의 어려운 살림. 또한 정치적 상황 등으로 인하여 과거공부에 뜻을 두지 못했던, 환경적인 요인들이 강하게 작용했던 결과로 보입니다.
정선이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건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으로 보고 있는데요. 앞서 어려운 집안이 되었지만, 외가에서 벼슬을 한 건 아니나 경재적인 여유가 있어서, 공부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겸재 정선이 화가로서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던 37세 때의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또한 그는 그림과 공부에만 매진한게 아니라 교양을 쌓아가는 데에도 열심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역에 나오는 ‘겸괘’ 를 따서 자신의 호로 붙인것만 봐도 그 애정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답니다.
정선은 40대 초반에 벼슬길에 오르게 됩니다. 김창집의 도움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누리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그 후 5년 뒤에는 경상도 대구에서 ‘하양현감’ 을 지내면서도, 다양한 그림들을 그렸는데 몇 몇 화첩들은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합니다.50대 초반에서 후반까지 정선은 더욱 활발한 작품활동을 했다고 하며, 관직도 높아져 의금부 도사 벼슬까지 지내며 남은 여생을 사는 모습을 봅니다.
50대 후반에 정선은 다시 경상도 포항으로 발령나게 됩니다. 동해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하며, 여행을 하기 좋은 지역이라 답사를 다니며 그림을 그리기 최적의 장소였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60세때 모친이 사망하면서 관직을 사임하고, 다시 상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선은 모친상을 치르고 62세때 한강을 지나 절경이 있는 청풍, 단양, 영춘, 영월 등 충청도 사군 지역을 여행하고, 그림을 많이 남겼는데 그 중에는 일렁이는 파도 / 번잡하지 않고 정돈된 구도 등 특유의 진경산수화법을 거침없고 장쾌하게 그려내어, 진경산수화의 초석이 되었던 면모들이 완성되어 나타납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더욱 완숙한 경지로 올려놓은 나이는 65~70세 때의 나이라고 하는데요.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 향교 부근에서 다시 현령을 지냅니다.
만 5년간 재직하며 기념비적인 역작들을 남기게 되는데, 부드럽고 서정적이며 청록색을 풍부하게 사용하는 채색법 등의 전체적으로 섬세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진경산수화의 폭과 깊이를 더욱 다지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 70세가 된 정선은 양천현령이라는 관직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가 84세까지 여유있는 만년을 보냈다고 하는데요.
72세에 회갑수경 종4품으로, 80세에는 첨지중추부사 정3품이 되고, 81세에 칠순 수경으로 종2품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올랐고요. 부친과 조부, 증조부까지 각기 호조참판, 좌승지, 사복시정을 추증 받았다고 하니 평생 겸손하고 온화하게 처신하며 예술에만 정진해온 대가의 명예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84세의 나이에 천수를 다한걸 보면,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노력한만큼 보상을 받고 살았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정선이 84세까지 살았던 건 화가로서는 드물다고 하는데요. 화가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화풍의 완성과 대자유의 경지까지 이릅니다. 72세에 그렸던 작품을 다시 그린 ‘해악전신첩’ 에는, 실제 경치를 회화적으로 자유롭게 응용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경륜이 많아질수록 작품이 더 복잡해지는게 아니라, 더욱 심플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74세에 그렸던 ‘사공도시품첩‘ 에는 오랜 경험으로 해석한 문화적 예술적 경지들이 회화로 표현됩니다.
76세 ‘인왕제색’ 작품에서는 정선이 평생 수련한 필묵법의 정수가 유감없이 드러난 명작입니다.
82세에 그린 ‘청송당’ 은 북악산과 창의선 능선 너머로 멀리 삼각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강하고 부드러운 필력과 진하고 연한 문법의 농담이 혼연일체 어우러진 경지를 잘 보여주는 그림 입니다.
겸재 정선이 그렸던 작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것이 ‘금강산’ 인 이유는 평생 여러차례 근처 일대를 유람하였다고 합니다. 외금강과 해금강의 절경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서울과 한강은 정선이 그렸던 진경산수화 중 금강산과 함께 가장 많이 그려진 곳인데요. 강남과 강북의 아름다운 한강변의 풍광을 많이 표현했답니다.
겸재 정선이 그렸던 ‘진경산수화’ 에는 평생에 걸쳐 탐방하고 그림으로 그린 지역들이 녹아져 있는데요. 전국에 모든 팔도가 다 포함되지만, 전라도와 제주도를 그린 작품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경산수화’ 는 이전에도 이미 그려왔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선이 대상 소재들을 더 구체화시켜 ‘진경산수화’ 로 확립시켰고요. 그 이후에는 ‘김홍도’ 가 원근법, 투시법, 서양화법 등을 많이 도입하여 ‘진경산수화’ 를 좀 다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표현시키는데 일조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김정희’ 일파의 등장으로 청조문화인화풍의 유행과 함께 ‘진경산수화’ 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정선은 ’진경산수화‘ 뿐 아니라, 특정한 실재 경치를 소재로 한 것이 아닌 화가의 마음속에 형성된 경치를 표현하는 ’관념산수화‘ 도 잘 그렸다고 하는데요. 대표적 작품 중 하나가 ‘소상팔경도’ 인데, 본래 중국 특유의 실경산수도를 진경산수화법으로 소화하여, 우리나라에 맞게끔 재탄생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고사도(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역사, 전설, 시문 등과 관계되는 소재), 화조화(꽃과 새를 소재로 한 동양화), 동물화, 초충화(풀과 벌레를 소재) 등도 잘 그려 다양한 회화세계를 정통성있게 구현해냈다는 찬사를 받은 대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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